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폴드 2세 (문단 편집) ==== 건설왕 ==== 앞서 말했듯이 현재 벨기에 국내에서의 평가는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.[* 주로 [[왈롱|벨기에 남부]]의 프랑스계 주민들 얘기지만...] 내치를 비교적 잘 한 면도 있지만 콩고에서 착취한 막대한 이익을 건물을 짓는 데 썼기 때문이다. 콩고에서 착취한 돈으로 벨기에에 건물들을 지어서 국민들로부터 "건설왕"(네덜란드어: Koning-Bouwer, 프랑스어: Roi bâtisseur)이라는 [[별명]]으로 불리기도 했다. 주로 [[브뤼셀]], 오스텐드, [[앤트워프]]에 지었다. 문제는 이러한 건물을 짓는 것에 거의 대부분의 돈을 투자했고 콩고에서 갈취한 돈을 가지고 애첩 블랑슈와 함께 프랑스나 다른 국가로 쇼핑이나 하고 다녔는데 특히 블랑슈는 [[프랑스]]에서 당시 금액으로 '''한 번 쇼핑할 때 300만 프랑을 사치하는 데 써 댔다.''' 게다가 벨기에인들의 복지 향상에는 '''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추가한 것이 아니었으며[* 후술할 내용대로 벨기에 북부에서 레오폴드 2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이것이다.] 이렇게 벨기에에 지어댄 건물들이 그의 정부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지은 것이다.''' 레오폴드 2세는 자신의 애인이 편하게 길을 다니라고 도로를 만들어 주거나 애인을 위한 건물들을 막 지어 댔다.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건물들을 국가의 소유로 만들어 버렸는데 이렇게 한 이유는 레오폴드 2세가 '''건물을 운영하는 비용을 자신의 돈으로 지불하기 싫어서 국가에 맡겨 버렸기 때문이다.''' 그리고 이 사실이 들통나자 자국민들에게 오히려 더 비판받는 계기가 되었다.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지었던 건물들을 현재까지도 잘 써먹고 있어서 현재는 이 건물들 때문에 레오폴드 2세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. 물론 당시 레오폴드 2세에게 무시당했던[* 레오폴드 2세 재위 기간 뿐만 아니라 이전 벨기에 독립 직후부터 [[네덜란드어권]]인 플란데런은 프랑스어를 우대하는 벨기에 당국으로부터 여러가지 차별을 당했다. 레오폴드 2세 재위 시절인 1898년에 언어평등법이 통과되면서 명목상 네덜란드어가 프랑스어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플란데런이 왈롱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.] 북부 [[플란데런]]에서는 레오폴드 2세를 여전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. ||<-2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irismonument.be/10005026_A016_P01.jpg|width=100%]]}}} || ||<-2> '''레오폴드 2세 집권기에 지어진 브뤼셀 생캉트네르 공원(Parc du Cinquantenaire)의 아케이드''' ||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ecbol3.myspecies.info/royal-museum-of-central-africa-tervuren-be066.jpg|width=100%]]}}}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grenstreinbus.be/2.jpg|width=100%]]}}} || || '''테르뷔런(Tervuren)시의 중앙아프리카 박물관''' || '''안트베르펀 중앙 철도역''' 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